사람에게 죽음은 숙명입니다.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맞이할 나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우리나라에선 1990년대 초반부터 각당복지재단을 중심으로 죽음준비교육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죽음을 이해하고, 슬픔을 치유하는 노력으로 시작해 주어진 삶을 더욱 풍요롭고 의미있게 살도록 돕습니다. 시니어신문도 ‘죽음’에 대한 화두를 던집니다. 글을 쓴 김선숙 기자는 30여년 동안 죽음준비교육 관련 활동에 헌신하고 있는 전문강사이자, 행복한노년문화연구소장, 각당복지재단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끝이 좋아야 좋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유종의 미”를 일컫는 말입니다. 폴 틸리히는 그의 저서 <존재에의 용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고대인의 불행은 숙명과 죽음의 문제에서 왔고, 중세기인의 불행은 죄와 벌의 문제에서 비롯됐으며, 현대인의 불행은 생의 의미를 찾지 못한 무의미로부터 온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마무리를 잘하는 것이 우리의 바람 일 것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때가 언제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삶의 문제도 해결하기 힘든 현시점에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죽음 문제를 거론하기란 쉽지 않지요. 흔히 죽음준비라는 말을 하면, ‘사는 날까지 살다가 가는 거지, 무슨 준비를 해야 하느냐?’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이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다가올 죽음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삶을 살펴볼 때 어느 것 하나 준비가 필요 없는 게 없지요. 삶 자체가 준비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철저한 준비 속에서 태어나지요. 만약 준비 없이 출산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출산 준비 이전, 아니 임신하기 전부터, 아니 결혼 전부터 결혼 준비가 필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요. 출산 후에도 양육 준비, 입학준비, 시험준비, 진학준비, 취직준비, 여행준비, 이사준비, 외출준비는 물론이고 일생에 한 번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방공예행연습이나 화재방지연습 등 모든 것에 준비가 필요합니다.

하물며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삶에서 죽음준비는 당연히 해야 하지 않을까요. 죽음에 대한 생각조차 못 하고 회피하다가 불현듯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 우왕좌왕하는 것은 물론이고, 두렵고 외롭고 고통스럽게 죽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유비무환이라는 말이 있듯이 준비를 하지 않으면 어려움이 따릅니다.

죽음준비에 앞서 죽음이 무엇인지 죽음의 특성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죽음의 특성은 보통 다음과 같이 4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죽음의 불가역성입니다. 인간은 죽은 후 이전의 삶의 영역으로 되돌아올 수 없습니다.
둘째, 삶의 유한성입니다. 삶은 유한적이어서 영원히 이 세계에 머물 수 없습니다.|
셋째, 죽음의 평등성입니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가 없이 모두 다 죽습니다.
넷째, 죽음의 불가지성입니다. 죽음의 세계는 영원한 미지의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기 위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파스칼은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미리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물보다 우월하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위대함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아름답게 삶을 정리하고 떠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죽음준비란?

죽음의 시기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죽음이 임박해서 준비해도 좋을 듯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살아있는 동안에 경험할 수도 없고, 누가 대신 죽어줄 수도 없지만, 살아있는 사람은 반드시 죽기 마련이며,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 이런 죽음을 아무 준비 없이 우왕좌왕하며 맞이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떠나는 자나 남는 자, 모두에게 큰 고통과 어려움이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우리 모두에게 죽음준비는 필요합니다. 죽음준비란 죽을 각오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준비는 죽음에 대한 바른 태도와 바른 이해라고 볼 수 있지요. 죽음을 알면 삶을 함부로 살 수 없습니다. 잘 살다가 해맞이, 달맞이, 손님맞이를 하듯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자는 의미입니다.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합니다. 즉,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습니다.

삶과 죽음은 하나

죽음준비는 곧 삶의 준비와 연관이 있습니다. 죽음준비는 삶의 유한성을 인지하고 앞으로 남아있는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준비하며 사는 것입니다. 삶과 죽음은 하나이어서 삶이 아름다우면 죽음도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역으로 죽음이 아름다워지려면 삶을 아름답게 살아야 합니다. 아름다운 삶이란 삶의 의미가 무엇이며,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고 이웃에게도 사랑을 나누며, 삶의 의미를 찾게 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빅터 프랭클(Victor E. Frankl, 1905-1997)은 죽음의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힘은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나치 치하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젊고 강한 사람들이 아니라, 일부 늙고 연약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살아남은 이유인즉, 그들이 스스로 살아가기 위한 목표를 부여했거나 그들의 존재 안에서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살아갈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는 니체의 말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 속에서 주어지는 모든 상황은 의미가 있습니다. 삶 속에는 심지어 통증과 죽어감, 상실과 죽음을 포함합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견뎌 낼 수 있습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그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직면할 것인지, 그 상황에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불행하게도 OECD국가 중 1위라고 하지요. 살아야 할 의미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살이라는 죽음을 택한다고 합니다. 세상에 아무리 성공한 자라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면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유한한 삶이기에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죽음과 좀 더 가까워집니다. 건강할 때,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을 다시 새겨봅시다. 앞으로 내가 어떤 삶을 살 것이며,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디자인해 봅시다. 되는대로 사는 삶의 결과는 어떨까요. 저절로 얻어지는 좋은 삶과 좋은 죽음을 기대해도 될까요.

행복한 삶, 아름다운 마무리는 저절로 찾아오진 않습니다. 좀 더 밝은 세상을 향해 영적으로 성숙한 삶을 소망해 봅니다. 삶도 죽음도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행복한 삶,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오늘도 ‘파이팅’ 합시다!


김선숙 기자는 죽음 성찰, 죽음준비교육의 목적과 필요성, 인생그래프, 용서와 화해, 호스피스의 필요성, 유언과 상속, 나에게 주는 상, 치매환자와 가족의 이해, 사진으로 쓰는 자서전 등에 대한 전문가입니다. 2006년 각당복지재단에서 ‘죽음준비교육지도자’ 교육 이수 후 본격적으로 죽음준비교육에 나섰습니다. 노인집단상담사(2008. 경기도노인상담협회), 평생교육사 2급(2007. 국가평생교육진흥원), 호스피스고위자과정(2009. 국립암센터), 웰라이프지도사 2급 자격증(2018. 각당복지재단)이 그러한 경력을 대변합니다.

사회복지학(노인복지) 박사인 김선숙 기자는 노인복지관에서 20년 이상 행복한 노년기 프로그램을 비롯해 죽음준비교육, 사별가족 프로그램 등을 진행했습니다. 이외에도 건강가정지원센터, 숭의여자대학교 등에서 사진으로 쓰는 자서전 강의, 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 유가족 집단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행복한노년문화연구소장, 각당복지재단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