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록 이사장이 한국미술재단 소속 작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추미양

[시니어신문=추미양 기자] 한국미술재단 황의록(74) 이사장은 그림 한 점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림으로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만들고 싶어 합니다. 지난해 비영리 공익법인 한국미술재단(KAF : Korea Art Foundation)을 설립했습니다. 가장 중요하게는 문화예술 소외지역 초등학교에 ‘학교 안 작은 미술관’을 무상으로 만들어 주고 있고, 미술작가를 선발해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적은 돈으로 큰일 하는 선순환’ 구조의 사업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한국미술재단이 운영하는 갤러리 ‘아트버스 카프’에서 황의록 이사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Q. 한국미술재단 설립 동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였습니다. 미술과는 좀 거리가 있는 분야에 몸담고 있었죠. 정년퇴직 10년 전, 은퇴 후 무엇을 하고 지낼지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6개월씩 해외에서 살아볼까?”란 생각도 했고요. 그러면서 미국 유학 시절 품었던 꿈인 사진을 소환했죠. 늦었지만 다시 사진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중앙대 사진 아카데미에서 3년 동안 사진 공부를 했는데, 갈수록 한계를 느꼈죠. 이때 미대 출신 사진작가가 조언했습니다. “심미적 눈을 뜨려면 좋은 그림을 많이 봐야 합니다.”

해외 출장이나 해외 여행할 때마다 미술관을 찾아 세계적인 화가들 작품을 감상했지만 정작 국내 작가 작품에는 관심이 적었습니다. 이때부터 국내 미술 전시회에 자주 갔고, 오프닝 행사 뒤풀이에 참석해 식사비를 몇 번 냈습니다. 그러자 ‘황 교수는 화가 후원자’라는 소문이 났죠. 국내 화가들과 교류하다 보니 이들이 대체로 경제적으로 궁핍하다는 것도 체감했고요.

2013년 정년퇴직을 한 뒤, 2년 동안 준비해 화가들을 돕는 ‘한국화가협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조합원 20명은 모두 후원자였죠. 그러다 지난해 한국미술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예술의 대중화를 꿈꾸는 저는 “미술이 대중의 삶으로 들어가야 한다”라고 생각했고,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그림을 가까이 접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한국미술재단은 서울 서초구에 전용 갤러리 ‘아트버스 카프’를 운영하고 있다. 연중무휴고 무료다. 사진=추미양

Q. 한국미술재단은 어떤 일을 하나요?

가장 중요한 사업은 문화예술 소외지역 초등학교에 ‘학교 안 작은 미술관’을 만들어 기증하는 것입니다. 교육부 추천을 받은 시도교육청 도움으로 강원도 초등학교에 2년 동안 30개 미술관을 기증했습니다. 올해는 경상북도 15개 초등학교에 미술관을 만들었습니다. 작은 미술관이지만 작품 수준은 높습니다. 엄격하게 선발된 한국미술재단 소속 작가들 작품이거든요. 특히 작가들이 세계 각 지역을 여행한 후 그린 그림은 아이들에게 미지의 세계를 상상하고 꿈꾸게 합니다.

재단 소속 작가들은 작은 미술관을 설치한 학교를 직접 찾아가 미술 수업을 합니다. 모든 재료는 재단이 준비해 드립니다. 수업 목적은 아이들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게 돕는 것이 아닙니다. 그림과 관련된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주고, 상상력과 감수성을 키워주는 것입니다. 그림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재미있는 것임을 느끼게 해주고, 잘 그렸다 못 그렸다 평가는 하지 않습니다.

올해 추진한 경북 15개 초등학교 ‘학교 안 작은 미술관’은 9월에 모두 완성됐습니다. 미술 수업도 예천 호명초등학교를 끝으로 전부 마무리됐고요. 이제 남은 것은 어린이들과 미술 수업을 진행한 화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행복한 그림전’ 뿐입니다. ‘행복한 그림전’은 2023년 1월 3일부터 16일까지 2주간 구미문화예술회관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학교를 벗어나 아이들의 작품이 여러 사람에게 소개됩니다. 아이들은 자존감이 높아질 것이고, 미술을 더욱 좋아하게 되겠지요.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 것입니다.

경북 예천 호명초등학교에 ‘학교 안 작은 미술관’을 만들어줬다. 미술관은 통행량이 많은 복도나 로비에 설치했다. 사진=한국미술재단
한국미술재단은 미술관 설치에 필요한 공사비와 조명, 석고보드 등 구입비를 전적으로 지원한다. 전시된 그림은 재단 소속 작가들의 작품과 특별히 제작된 스페셜 에디션 작품이며, 영구 기증한다. 사진=한국미술재단
재단 소속 작가가 경북 예천 호명초등학교 교실에서 미술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미술재단
경북 예천 호명초등학교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에는 꿈과 희망이 담겨있다. 사진=한국미술재단
경북 문경 호서남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학교 안 작은 미술관’ 개관기념 미술 수업에서 자신의 얼굴을 당당하게 표현했다. 사진=한국미술재단

Q. 작가들을 엄선, 작품활동도 지원하지요?

현재 40여 명의 재단 소속 작가를 돕고 있습니다. 재단 작가 선발 과정은 엄격하기로 유명합니다. 도와줄 만한 가치가 있고 도움이 절실한 작가를 뽑기 위해 4단계를 거치죠. 재단은 소속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돕기 위해 매년 세계여행을 보내드립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빛, 색, 풍광을 경험할 기회를 주는 것이지요. 2018년에는 지중해 지역인 이탈리아를 다녀왔고, 2019년에는 스페인, 모로코, 사하라 사막을 탐방했습니다. 지난 2년간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막히면서 남도 여행과 울릉도 독도 여행에 만족했지만, 올해는 미국과 캐나다를 다녀왔습니다. 작품 활동을 위한 영감을 얻기 위해서죠. 내년엔 아프리카로 떠날 계획입니다. 작가들이 해외여행을 다녀와 내놓은 작품은 재단 갤러리에서 전시하고, 초등학교 ‘학교 안 작은 미술관’에도 기증합니다. 내년 온라인 갤러리를 만들어 재단 작가와 작품을 전 세계에 알릴 계획입니다.

재단 작가와 후원자는 지난 8월 19일부터 9월 5일까지 미국과 캐나다를 여행했다. 첫 여행지인 산타페는 뉴욕, LA에 이어 미국 3대 미술시장이 있는 도시로 인디언들의 문화가 짙게 남아있다. 사진=한국미술재단
산타페에 있는 사막과 인디언의 문화, 로키산맥의 푸르름과 빙하지형을 담은 여행 작품을 아트버스 카프 갤러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11월 4일부터 16일까지 전시된다. 일러스트=한국미술재단

Q. 말씀하신 사업들은 막대한 후원금이 필요할 텐데요.

예술은 산소 같은 존재입니다. 예술이 삶 속으로 들어오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공감 능력도 좋아집니다. 사회적 갈등도 줄어들고요. 기업도 예술을 접목해야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제 생각에 공감한 20명이 뜻을 모아 한국화가협동조합을 만들었고 한국미술재단으로 성장했습니다.

현재 60여 명의 후원자가 재단을 돕고 있습니다. 기업도 있고 개인도 있습니다. 적게는 100만 원부터 많게는 1억 원까지 매년 후원해 주십니다. 후원금은 주로 작가들의 전시와 세계여행, 학교 안 작은 미술관 기증 사업에 쓰이고 있습니다. 후원자에게는 세금 공제를 위한 기부금 영수증 발급과 함께 작가들과 함께 세계여행을 떠날 기회를 드립니다. 여행 경비는 후원자 자신이 부담하고요. 앞으로 많은 분들이 재단 사업을 후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후원자들이 큰 보람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국미술재단은 월간지 ‘아트버스 카프’를 매달 발행해 무료로 배포한다. 시민들이 미술에 좀 더 친숙해지도록 돕기 위해서다. 사진=추미양

Q. 앞으로 이루고 싶은 큰 꿈이 있다면.

화가들의 작품 수는 많지만, 판매 수는 매우 적습니다. 작품을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죠. 특히 화가가 사망해 가족이 물려받으면 폐기할 수도 없고 보관할 공간도 마련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국민은 그림 한 점도 사기 힘듭니다. 이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무료수장고’를 만들고 싶습니다. 무료수장고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 비용만 받고 전 국민에게 저렴하게 작품을 빌려드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료수장고 지을 땅을 마련하는 것은 부동산 사업이기에 저희가 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정부가 저희 사업의 가치를 인정하고 정부 소유 유휴 공간을 무료로 사용하도록 해준다면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또한 ‘학교 안 작은 미술관’이 600개 초등학교로 확대되길 바랍니다. 40년 걸리는 장기 사업이지만 꼭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