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안기영 기자] 한홍택이 도쿄도안전문학원 1938년 졸업작품으로 그린 <언덕>이다. 한복을 입고 춤을 추는 여인과 패랭이를 쓴 푸른 의상의 남자가 비파를 연주하고 있다.
당시 일본에 전해진 서구 아르누보 스타일이 이 그림에도 엿보인다. 치마의 곡선, 오른쪽으로 고개를 기울인 모습에서 모딜리아니의 모습 등 유학시절 접한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이 그의 작품에서도 독특한 형태와 색채로 나타난다. 장승과 한복, 비파 또 배경에 보이는 황토빛 산야 등 한국적 소재를 활용하면서도 서구적인 인체 비율이 눈에 도드라진다.
한홍택 사후 유족이 유품을 정리하다가 찾아낸 그림이다. 보관 상 문제로 오른쪽 일부분이 찢겨진 이 그림 앞에 서면 관객의 마음도 찢어지는 것 같다. 한국 산업미술의 디자인 개척자로서 당시 척박한 시대를 이끌어 온 개척자. 후대 디자인계에서 전사(前史)적 인물로 거론되는 그에 대한 평가를 들으면 또 마음이 착잡해진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 인용된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에서 한 구절이 생각난다.
“왜냐하면 존재한다는 표현으로 여러분이 본래 의미하려는 바를 여러분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전에는 그것을 이해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당혹해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가면 이 그림을 볼 수 있다. 현재 모던 데자인전 전시 중이다.